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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writing/서평 review

현대 타이포그래피: 비판적 역사 에세이(Modern Typography — an essay in critical history)

2020년 7월 온라인 서점 신간 목록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게 기억이 난다. 알고보니 예전에 나왔던 게 복간된 경우였다. 작업실유령의 책들은 항상 관심가는 주제를 다뤄서 구입하게 되지만, 읽기 쉬웠던 책들은 없었다. 이게 원전이 어렵기 때문인지 아니면 번역을 거치면서 텍스트가 복잡해진 것인지 알 수는 없다(어쨌거나 이렇게 번역서가 꾸준히 나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이 책은 여러 번 봐서 읽는 것도 오래걸렸고, 쓰는 것도 시간을 많이 들였다. 그 과정에서 많은 공부가 된 것 같다. 그래서 골치 아프지만 감사한 책이다.

 

로빈 킨로스 지음 | 최성민 옮김 | 작업실유령

2020년 출간 | 국판 변형(135X216) | 양장제본

2020년 9월 22일 작성


이 책은 역사 에세이다. 전문 역사서처럼 정교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쓴 것이라 할 순 없지만, 역사적 사실들을 추려 논의하고자 하는 대상을 가르는 경계가 어느 정도 뚜렷해 보인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로빈 킨로스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현대’의 ‘타이포그래피’다. 저자 본인은 영국인이기에, 자신이 논의하고자 하는 타이포그래피는 전적으로 서구의 전통이다. 아시아 등의 비서구권에서 전개된 타이포그래피 역사는 여기서 나오지 않는다. 사실 부제 한편에 있는 ‘비판적’의 의미를 명확히는 모르겠다. 비판을 하려면 비판의 대상이 될 어떤 기성 담론을 알아야 하는데, 그에 대한 정보가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뻔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저자의 의지이다. 인쇄사와 타이포그래피사를 뒤섞어서 누구나 생각 가능한 금속활자,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부터 얘기를 시작하고, 역사 인식 없이 ‘이 시기에는 이런 게 나왔다’며 발명된 활자체를 나열하는 식의 논의가 그런 것일 테다. 또 한가지, 타이포그래피사 뿐만 아니라 현대사를 다룰 때 빠지지 않는 ‘현대주의(modernism, 모더니즘)’의 흥망성쇠를 성찰하려는 저자의 초점이 중요해 보인다. 그래서 ‘비판적’은 ‘성찰적’과 높은 수준으로 대응될 듯싶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은 17세기다. 이때 활자체 도량형에 대한 논의가 처음으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합리성의 핵심 중 하나는 측정 가능성, 표준화일 텐데, 단위를 고심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다. 피트feet와 같은 기존 단위를 활자체에 적용하자는 얘기나 활자만을 위한 독자적인 단위를 만들자는 생각들이 17세기 말과 18세기 초를 경유하며 나왔다. 특히 피에르 푸르니에(Pierre Simon Fournier)가 고안한 포인트는 상당히 획기적인 합리화 요소였다. 디도 가문의 활자체, 디도(Didot)는 포인트법과 연계하여 꽤나 유행을 끌었다고 한다.

 

18세기 막바지의 산업혁명은 인쇄업에도 영향을 끼쳤다. 손으로 하는 조판을 점점 정교해지는 기계가 대체하기 시작했다. 19세기는 기계화의 여파가 많은 변화를 촉발한 시기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 인쇄업은 자본주의 발전과 크게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상품을 팔기 위해선 그 상품을 표현해줄 요소들이 따라야 한다. 당연히 늘어나는 인쇄물의 총량을 감당할 기술 혁신이 있었다. 라이노타이프(linotype)나 모노타이프(monotype) 같이 타자기로 입력된 한 행이나 한 글자에 따라 주조할 판이 만들어지는 기계가 개발되었다. 더 많은 상품을 팔겠다는 동기는 타이포그래피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광고가 서서히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눈에 띄어야 한다는 욕망도 생겨났을 것이다. 19세기에 산세리프는 그 속에서 생겨났다. 획의 형태는 남아 있으면서 기존의 로만과는 다르고, 보다 눈에 띄는 슬랩 세리프(slab serif)가 이때 만들어졌다. 자본주의가 촉발한 기술과 환경의 변화는 상당히 급격하다. 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부분이다. 그에 대한 반발이나 반성도 항상 뒤따르기 마련이다.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자본주의의 영향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상품이 대량 양산되는 그 성찰 없음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모리스가 전개한 미술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은 과거의 수공예로 가능했던 정교한 생산을 자본주의 대량생산의 대안으로 내건 경우였다.

 

이는 어쨌거나 대단히 복고적이었지만, 동시에 저항적이었다. 그가 만든 켐스콧 프레스(Kelmscott Press)에는 그런 지향을 명확히 담겼다. 이곳의 책은 항상 특유의 캘리그래피로 제목이 새겨져 있었다. 모리스의 출판 사업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시대착오적이었기 때문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많은 급진적인 사상들이 그렇듯 수많은 사람들에게 반성 지점이나 비판 요소들을 던져 준다. 타이포그래피에 한해서 그것은 ‘어떻게 잘 만들 것인가’, ‘무엇이 잘 만든 것인가’일 텐데, 한마디로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핵심적이었다.

 

영국과 미국은 둘다 영어를 써서 ‘영미권’이란 이름으로 묶이곤 한다. 같은 언어를 쓰는 모리스의 사상이 가장 크게 가닿은 곳은 우선적으로 영미권이었다. 저자는 이것을 ‘전통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전통주의는 ‘잘 만든 것’의 기준을 과거에서 찾는 경향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전통주의는 켐스콧에서 쓰인 캘리그래피처럼 수공예가 오롯이 답이라고 생각지는 않았고, 인쇄업에서의 강렬한 변화를 일단 인정하고 그 속에서 과거의 가치를 성찰했다. 본문을 다룰 때 세리프체, 로만의 쓰임은 여기서 중요했다. 영국과 미국의 양상은 전통주의라는 큰 틀을 공유함에도 약간씩 달랐다. 신대륙 미국에서는 영국의 영향이 컸지만 신대륙 특유의 자율적인 면모도 있었다. 세리프체를 중심적으로 다루면서도 산세리프나 여타의 활자체 개발도 적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한 산세리프 활자체가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말이다. 프레더릭 가우디(Fredrick Goudy)나 윌리엄 드위긴스(William Dwiggins)의 활자체는 그런 흐름에서 나온 걸작이었다.

 

영국은 그보다 보수적이었다. 저자는 이런 보수적인 틀 속에서 이뤄진 개혁을 ’신전통주의’라고 말한다. 기계 인쇄를 인정하되, 그 속에서 과거의 가치를 되살리자는 논의는 스탠리 모리슨(Stanley Morrison)의 행보로 대표된다. 스탠리 모리슨은 전형적인 전통주의자였다. 그는 로만을 제외한 활자체 형태에 크게 회의적이었다. 모노타이프 조판기를 만드는 모노타이프 사에 타이포그래피 고문으로 있으면서 과거의 훌륭한 로만 활자체들을 복원하는 일을 했다. 캐즐런(Calson), 보도니(Bodoni), 가라몬드(Garamond)가 그랬다. 그의 대표작인 타임즈 뉴 로만(Time New Roman)은 세리프체가 기계 조판의 핵심이 되는 신전통주의 가치를 고스란히 담은 결과물이다.

 

물론 영국에서도 이런 흐름에 꼭 따르지 않는 인물도 있었다. 에릭 길(Eric Gill)이 그랬다. 에릭 길은 세리프체가 주류인 흐름에 공감하기는 했으나, 어떤 영역에서는 산세리프가 잘 쓰일 수 있다고 절충적으로 생각한 인물이었다. 그가 개발한 길 산스(Gill Sans)는 철도나 엔진 명판에 쓰이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럼에도 길은 길 산스가 본문에 쓰일 만한 서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신전통주의의 경향을 딱 요약해주는 것은 스탠리 모리슨과 같이 모노타이프 사에서 일했던 타이포그래퍼 비어트리스 워드(Beatreice Warde)의 말이 아닐까 싶다.

눈 앞에 좋은 와인 한 병과 두 개의 잔이 있다. 하나는 호사스럽게 장식된 황금잔이고, 또 하나는 수수하고 투명한 유리잔이다. 아무거나 골라 와인을 따라 보라. 어떤 잔을 고르냐에 따라 와인에 대한 조예가 판가름 날 것이다. 와인을 모르는 자, 즉 와인의 색과 향과 맛에 관심이 없는 자라면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황금잔을 선택할 것이다. 반대로, 와인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자라면 내용물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투명한 유리잔을 선택할 것이다.

 

여기서 투명한 유리잔은 눈에 익숙한 로만, 세리프체다. 잘 읽히는 텍스트를 위해서는 활자체 개별 형태가 특별히 눈에 띄지 않도록 절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신전통주의자들을 지배했다.

 

이와 딱 반대되는 흐름은 유럽 대륙, 특히 독일에서 있었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의 독일을 얘기할 때 ‘후발 자본주의 국가’라는 말이 나온다. 먼저 공업화에 성공한 영국,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산업화가 비교적 늦었다. 인쇄업의 성장도 그 속도에 비례하여 꽃을 피웠다. 한편으로 독일 타이포그래피에는 영미권에 없는 요소가 있었다. 우리가 블랙레터라고 얘기하는 독일만의 로컬 서체가 그것이다. 그래서 19세기 이전의 독일의 서체 개발자들은 두 가지 서체를 동시에 만들곤 했다. 하나는 안티콰(Antiqua)라고도 일컬어지는 로만이고, 다른 하나가 블랙레터였다. 이들에게 ‘전통’은 영국처럼 로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로만이 좀 더 국제적이고 현대적으로 생각되었고, 산세리프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한편으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블랙레터가 독일 타이포그래피에서의 쟁점이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블랙레터에 대한 견해가 더욱 정치적으로 비화되었는데, 블랙레터가 독일 고유의 것, 민족성과 결부되어 생각되었고 보수/우익의 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블랙레터 자체의 나쁜 가독성과 그에 대한 전통주의자들의 편협한 관점은 ‘전통 가치’를 영국처럼 살리기 어렵게 했다. 반면에 산세리프는 그 반대, 진보/좌익 이데올로기와 원든 원치 않든 결부되었다. 타이포그래피가 정치적으로 되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현대주의의 실험은 무너진 전통 가치 위에서 활발하게 이뤄졌다.

 

예를 들어 신타이포그래피가 그랬다. 그것은 전적으로 독일이 핵심인 흐름이었다. 현대주의가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고, 그에 걸맞은 인쇄 역량이 있는 곳은 독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얀 치홀트(Jan Tschihold)가 전개한 신타이포그래피 운동은 한마디로 근본적인 목적을 다시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책이나 여타의 텍스트 매체는 읽힐 것을 목적으로 하기에 딱 그것에 맞춰서 모든 것을 바꿀 것을 주문한다. 블랙레터가 아닌 로만과 산세리프 같이 잘 읽히는 활자체를 쓰고, 불필요한 장식을 줄인다. 판면에 기본적인 사선을 긋는 행위도 그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종이 규격은 실질적인 공업 규격에 맞춰 생산하기 편하게 표준화해야 한다. 이것은 급진적인 기능주의라고도 말할 수 있다. 파울 레너(Paul Renner)의 푸투라(Futura)가 이런 신타이포그래피의 영향 하에서 나온 걸작이었다. 신타이포그래퍼들은 기능성과 소통 가능성 면에서 산세리프를 궁극적인 본문 활자체로 생각했고, 로만의 가독성을 능가하는 것이 개발되길 기대했다. 푸투라는 그런 면에서 다수가 만족하는 활자체였다.

 

1933년은 나치당의 국가 사회주의가 집권하는 시기였고, 그 이후 세계대전을 경유하는 십년 남짓은 타이포그래피의 암흑기였다. 얀 치홀트도 나치당의 압력으로 교수직에서 쫓겨나야 했고, 다른 나라로 망명해야 했다. 얀 치홀트의 입장이 바뀐 것도 이 시기를 겪으면서였다. 영국으로 망명해 있으면서 신전통주의를 접했고, 전통과의 단절을 쉽게 말하는 현대주의의 무모함에 환멸을 느꼈을 듯싶다. 아이러니하게도 얀 치홀트는 자신이 만든 조류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가 되어 있었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 현대주의는 폐허가 된 독일로부터 스위스로 향했다. 바우하우스, 신타이포그래피, 전후 독일 내에 잠깐 존재했던 울름 조형 대학의 계보는 ‘스위스 타이포그래피’라는 새로운 꽃으로 피어났다. 스위스가 세계대전 중 중립국이었고, 이미 독자적으로 걸출한 제품 생산이 가능한 인쇄업의 수준으로 가능한 결과였다. 막스 빌(Max Bill), 에밀 루더(Emil Ruder), 요제프 뮐러브로크만(Josef Müller-Brockmann) 같은 주도적인 디자이너들이 현대주의 타이포그래피를 좀 더 급진적으로 끌고 나갔다. 이를테면 정사각형 판형에 들여쓰기를 하지 않고, 산세리프가 본문 서체로 쓰이며 왼쪽 맞춤/오른쪽 흘리기를 새로운 형식미의 기준으로 내세웠다.

 

얀 치홀트는 이런 식의 정형화가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들었는지, 스위스 타이포그래피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막스 빌과 얀 치홀트가 서로를 괄시하며 치렀던 논쟁은 그렇게 나왔다. 논쟁의 구도는 쉽게 예상 가능하다. 산세리프 대 세리프, 새로운 판형 대 전통적인 규격, 다른 레이아웃이 주는 참신함 대 익숙한 레이아웃이 갖는 안정감. 누가 이겼다고 단정할 수 없는 논쟁이다. 중요한 점은 헬베티카(Helvetica)와 유니버스(Univers)의 타이포그래퍼들이 현대주의의 실험을 더 깊이 있게 해냈다는 점일 테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현대주의란 말은 참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현대는 결국 동시대인데, 현대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조류들은(신타이포그래피, 스위스 타이포그래피 등) 어쨌거나 한 때를 풍미했다. 기술은 생각보다 빨리 변했고, 기성 디자인에 대한 비판과 전복은 예상보다 다채롭고 급격하게 이뤄졌다. 네빌 브로디(Neville Brody) 같은 반골적인 인물은 기성 타이포그래피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만든 서체로 스타덤에 올랐고, 납 활자는 사진 식자로, 사진 식자는 필름으로 대체 되어갔다. 또 한편으로 맥킨토시의 등장은 우리에겐 이미 일상이 된 탁상출판(DTP, Desktop Publishing)의 서막을 알렸다. 활자체가 컴퓨터를 통해 디자이너 손바닥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불과 30년이 안 걸렸다. 포스트스크립트(PS), 트루타입(TTF), 오픈타입(OTF)을 경유하면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활자체들을 그야말로 곁에 둘 수 있게 됐다. 이건 비단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만인에게 타이포그래피의 도구가 개방된 기술혁신이다.

지금 사회의 빠른 변화 속도는 꼭 폭주하는 기관차 같다. 과거의 현대주의는 계몽, 더 나음에 대한 최소한의 사유가 있었지만, 지금 시대의 현대성에도 똑같이 적용될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비관론이나, 더 나은 것 따위는 없다는 회의주의가 힘을 얻기 쉽다. 저자가 현대주의 이후에 현대성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그런 상태로 치닫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가 굳이 짧지 않은 역사 이야기를 한 것은 변화라는 것은 항상 전례 없었고, 그 때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도 더 나은 답을 구했다는 사실을 되짚기 위함일 것이다. 역사 이야기가 던져줄 수 있는 가치나 규범은 너무나 많은 것들이 주어져 있어 오히려 혼란스러운, 과도하게 풍요로워서 오히려 맥을 잡기 어려운 지금 시대에 기준을 제시해주는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