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하우스'를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에 책 구입을 고민한 기억이 난다. 바우하우스라는 이름을 이전에도 듣기는 참 많이 들었다. 문제는 사실상 아는 게 없었다는 점이다. 『바우하우스』 표지는 서점을 가면 언제나 눈에 들어왔는데, 더욱이 광화문 교보문고 예술 분야 매대는 순환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탓에 그 주변을 돌 때마다 보였던 듯싶다. 볼륨이 꽤나 두꺼워서 어차피 단숨에 못 읽을 거 사서 뭐하냐는 생각 때문에 구매를 적잖이 망설였지만, 당장 못 읽어도 사두면 보게 되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집어들었다. 글을 쓸 일이 있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완독했다. 도판 자료가 많고 내지 디자인도 훌륭해서 그 내용이 좋은 것과 상관없이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다.
김종균 외 17인 지음 | 안그라픽스
2019년 출간 | 국판 변형(149X217) | 무선제본
2020년 8월 10일 작성
바우하우스(Bauhaus)는 거대한 이름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십수년 존속했던 독일의 한 조형예술학교는 모던 디자인의 획기적인 출발점,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꾀하는 최초의 실험 등으로 회자되었고, 그 의미가 유독 각별해졌다. 이 책은 그렇게 신화화된 바우하우스를 여러 각도에서 조망한다. 18명의 저자가 바우하우스를 바라보는 18개의 관점이 제각기 흥미롭다. 한 명의 저자가 책을 썼다면 바우하우스라는 시대적 공간을 일관된 틀로 바라보기 쉬웠겠지만, 이 책은 과감히 그런 장점을 포기했다. 대신 마치 피카소(Pablo Picasso)의 그림처럼 동일한 시점으로부터 탈피한 표현주의적인 스케치를 바우하우스라는 거대한 대상으로 시도한 듯싶다. 바우하우스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여러 각도에서 코끼리를 만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바우하우스를 개관한 다른 책을 보고서, 이 책을 접했다면 더 흥미롭고 풍요로운 독서가 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기도 했다. 어떤 주제들은 확실히 깊이 있게 읽을 수 없었다. 전제하는 맥락들이 많았고, 더 솔직하게 말하면 관심이 없었던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런 난점 속에서도 내게 남은 내용을 적고자 한다.
기계의 힘이 인간을 압도해가는 시기에 바우하우스는 태어났다. 기계 발전을 등에 업은 자본주의는 유례없이 많은 상품들을 쏟아냈고, 생산의 과잉은 때때로 공황을, 심지어는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그랬다. 생산 조건이 바꼈다는 것은 비단 경제적인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예술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점차 기계화되는 세상에서 정밀묘사를 중심으로 한 기성 회화의 쓸모는 의문스러운 것이 되었다. 본질을 다시 묻는 실험들이 유럽 사회 곳곳에서 있었다. 길게보면 표현주의 회화부터 수공예와 장인이 중심이 되었던 공예의 쓸모를 다시 묻는 움직임(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가장 기초적인 색채와 형태만을 활용한 예술의 실험(몬드리안(Piet Mondiran)의 그림으로 대표되는 더스테일(De Stijl), 러시아 구축주의(Constructivism)), 기계화를 긍정하고 그런 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공예 운동(독일공작연맹(Deutsche Werkbund)) 등이 그러했다. 바우하우스는 갖가지 예술 운동의 혼합물이었다. 만들어진 배경도 그랬고, 그 공간을 구성하는 내용도 그랬다. 물론 그 이름만 따지자면 건축이 핵심이 되어야 했다. 가장 주축이 되어 바우하우스를 만들고자 했던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는 건축가였고, 장인 중심의 공예운동에 공감했던 사람이었기에 ‘건축업자 조합’을 의미하는 바우휘테(Bauhütte)를 본따서 바우하우스라 명명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다양한 분야의 공방이 생산과 교육을 병행하는 종합 공방이자, 조형예술학교에 가까웠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구성원으로 있었다. 슈퇼츨(Gunta Stölzl),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모호이너( László Moholy-Nagy), 알베르스(Josef Albers), 클레(Paul Klee) 등이 그랬다. 이들은 각기 다른 공방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마이스터였다. 그리고 예술과 공예에 관해 다른 철학을 갖고 있었다. 누군가는 좀더 공예 운동으로서 기술과 생산에 복무하는 예술을 생각했고, 누군가는 표현주의의 기치를 더 급진적으로 끌고 나가 새로운 미감을 추구하는 쪽이었다. 어떤 이는 요소나 매체의 물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중요시했고, 또 다른 사람은 기계화를 극단으로 추구했을 때 나타나는 물성 없는 예술의 실험, 아방가르드에 더 무게를 두었다.
한편으로 교장이 누구인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에 따라서도 바우하우스의 구성은 달라졌다. 바우하우스는 세 번 위치가 바꼈다. 바이마르 국립 바우하우스(Staatliches Bauhaus in Weimar)로 시작했다가, 한번은 데사우(Dessau)로, 마지막은 베를린(Berlin)으로 이동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정치적으로 대단히 불안정했고, 학교는 그 불안정한 정치 변동의 틈에서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학교가 해당 지역에서 쓸모 없다고 지방 의회 다수파가 주장하면 영락없이 폐교의 압력에 놓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우하우스의 이사는 탄압 속에서 기반을 찾는 과정이었다. 이사 시점을 전후로 교장이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바우하우스에 투영하는 철학은 달랐다. 건축이 오롯이 중심이 되는 건축학교를 생각한 사람이 있었으면, 생산물을 내놓는 공방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었다. 교장의 입장에 따라 가르치는 마이스터의 인사 변화도 있었다. 일례로 칸딘스키는 3대 교장 반데어로에(Mies Van Der Rohe)가 바우하우스 를 완전한 건축학교를 되돌리려 하자 더 이상 마이스터로 함께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바우하우스를 어떤 단일한 모습으로 환원하기가 어려워진다. 그 십수년의 특정 국면에 따라서도 달랐고, 동일한 시기 속에서도 전혀 다른 생각을 했던 이들이 공존하여 교단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획기적인 최초’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그러한 기점이 기억되는 방식은 상당히 선택적이다. 바우하우스도 그랬다. 현대 디자인(design)이 예술과 기술의 경계에 있는 것으로 개념화된 것처럼, 보편적인 의미의 디자인, 더 세련되게 표현하자면 대문자 디자인(Design)의 탄생으로서 바우하우스는 주로 기억된다. 미감을 행함에 있어 쓸모와 본질을 묻는 작업은 기능을 넘어서는 허영이 없는지 따지는 것이다. 바우하우스의 모든 것을 기능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바우하우스 공방에서 나온 산품들은 대체로 그런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장식은 최소화되어 있고, 실질적인 쓸모를 최우선적인 것으로 여긴다. 형태가 전적으로 기능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우리가 ‘모더니티가 줄 수 있는 미감’이라 하면 생각되는 것들이 주로 이런 특징으로부터 나온다. 바우하우스가 거대한 이름이 되었던 것은 떻게 보면 이런 선택적이지만 분명한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후 세계의 수많은 디자인 학교가 바우하우스를 모델로 하거나 그것으로부터 계승-발전하는 형태로 성장했다. 한국 대학의 디자인 학부 발전 역시 바우하우스의 유산을 일정 부분 거름으로 삼았다.
서두에 이 책은 다각도로 바우하우스를 다루고 있다고 했는데, 내가 읽기에는 다소간 어려웠지만 더 의미 있는 작업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더 옳은 방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바우하우스를 둘러싼 보편적인 논의는 이미 충분히 많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같은 문외한조차 바우하우스라고 하면 바로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는 게 아닐까. 오히려 그러한 선택적 기억의 신화화 때문에 가려진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단적인 것이 바우하우스는 성차별적인 공간이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젠더 모순에 대한 인식이 거의 바닥에 가까웠던 시절에 성별에 관계 없이 학생을 뽑고자 했던 바우하우스의 시도는 상대적으로 깨어있던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뽑아 놓은 여성 학생들을 남성 마이스터는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으며, 학기를 거듭할수록 점차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여성 학생 비율을 줄여버렸다. 예를 들어 공예에 대한 성차별적 인식에 따라 학생들의 전문 분야를 나눠서, 여성들은 거의 태반이 직조 공방에 배정되곤 했다. 그 과정에서 군타 슈퇼츨과 같은 걸출한 마이스터가 배출되기도 했지만, 여성이 차지하는 학생 비율에 비하면 마이스터는 사실상 남성이 독점하는 영역이었다.
또한 마이스터에 따라 예술이나 교육에 대한 철학이 달랐기 때문에, 한 사람의 견해나 교육 과정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바우하우스를 새롭게 보는 또 다른 방식일 것이다. 모호이너지의 매체 미학이나 알베르스의 진보주의 교육관이 그런 꼭지였는데, 대략적으로만 이해한 듯싶지만 흥미롭게 읽었다.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가 꽤 오랜 기간 마이스터로 있었음에도 따로 할애된 텍스트가 없었다는 점은 다소 아쉬웠다.
지금은 디자인의 미감을 찾는 데 있어 불필요한 경계를 두지 않는 시대에 있는 것 같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포스트모던한 디자인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한 때의 다분히 시대적인 아름다움도 자연스럽게 재평가되고 새로운 세련미를 얻어 곧잘 계승 된다. 이른바 ‘뉴트로(Newtro)’라 얘기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어떻게 보면 미감의 레퍼런스를 유례없이 풍부하게 얻을 수 있는 토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런 현격한 변화에만 집중하면 우린 100년 전과 너무도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그럼에도 우리가 바우하우스에서 배우기 위해서는 그들이 갖고 있던 문제의식이 어떤 사회관계에서 비롯됐는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기술 발전이 많은 것을 집어 삼키는 시대라는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사진이 회화를 위협한 것처럼, 인공지능은 인간 노동의 기반을 무너뜨릴 것처럼 보인다. 바우하우스와 함께했던 사람들은 그럴 수록 더 첨예하게 본질에 대해서 물었다. 나는 그것이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어떤 인간성의 핵심을 찾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해본다. 물론 구체적인 물음은 지금 시대에 맞게 달라져야 하겠지만, 디자인 노동의 본질을 묻는다는 방향성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