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토머스 지음 | 정은주 옮김 | 마티
2018년 출간 | 신국판 변형(152X220) | 무선제본
2020년 1월 5일 작성
저자 더글러스 토머스(Douglas Thomas)는 디자이너이면서 역사학자인 독특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다. 서체를 주인공으로 하는 역사 이야기를 쓰기에 이보다 적절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서체의 역사를 다뤘던 자신의 논문을 단행본으로 발전시킨 것이 이 책인 듯싶다. 1920년대 파울 레너(Paul Renner)가 고안한 푸투라는 기하학적인 정교함이 남다른 서체이다. 1920년대 독일은 바우하우스로 요약할 수 있듯, 모더니즘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모더니즘의 특징으로서 들 수 있는 것은 일종의 간략화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더니즘은 급진적인 실용주의의 관점으로서도 이해될 수 있다. 글자의 세리프(한글 타이포그래피로 말하자면 부리)가 없는 산세리프(sans serif) 서체의 개발이 진전을 보였던 것은 모더니즘의 실험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한 실험의 도가니 속, 푸투라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는데, 그것은 요스트 호훌리(Jost Hohuli)도 이야기 하듯, 푸투라가 모더니즘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면서도, 이전부터 익숙했던 글자체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체에 관한한 독자는 대체로 보수적이다. 시대적인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너무 확연하게 바뀌지 않는, ‘새롭고도 익숙함’의 긴장이 서체의 인지도와 직결되는 것이다. 푸투라의 인기는 이념 대결이 가속화되던 1920년대 이후의 세계에서 이념과는 상관없이 어디든 등장하는 웃기는 현상도 만들었다. 이를테면 1930년대 독일 공산당의 포스터와 히틀러 집권 이후 독일의 강제노동수용소 허가증 서체가 같은 것이다. 이런 양상은 유사하면서 다르게 이후의 시대에도 반복되었는데, 급진적인 예술가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가 자기 작품 속 카피를 푸투라로 적었던 것을 슈프림(Supreme)이라는 스트릿 패션 브랜드가 로고로 차용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훌륭한 서체의 범용성을 보여주는 것이면서도, 급진성과 대중성의 순차적인 흐름을 드러내기도 한다. 푸투라는 급진성과 대중성의 끝나지 않는 순환을 오래도록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푸투라는 쓰지 마세요’라는 도발적인 말을 제목으로 달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전설적인 서체가 만든 유행의 순환 고리에 도전을 하라는 것이다. 푸투라 서체가 만든 유행의 순환 고리는 계속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모더니즘의 기하학적 실험의 성공작이었다가(급진성), 헬베티카 이전의 보편 서체였다가(대중성), 다시 2015년 영국 보수당이 그러했듯 혁신을 내걸면서 온갖 카피의 서체를 푸투라로 도배하는 진풍경(급진성)이 펼쳐진다. 저자는 이 흐름을 넘어서 또 다른 분기점이 될 만한 서체를 기대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익숙한 흐름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도 안 되고, 기존 서체로부터 별반 다를 게 없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즉 ‘새롭고도 익숙함’의 긴장이란 게 어디 말처럼 쉽겠냐만, 서체 발전의 역사는 그러한 긴장감이 기깔나게 구현되었던 역사가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