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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writing/발제 혹은 정리 summary

[IC]새로운 자본 읽기(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 9부 공황, 10부 부르주아적 관계의 물신성

 

미하엘 하인리히(Michael Heinrich) 지음 | 김강기명 옮김 | 꾸리에

2016년 출간 | 신국판 변형(143x230) | 양장제본

이문커먼즈 2021 10 17 세미나


9부 — 1. 주기와 공황

화폐가 발명된 이래로 이자는 존재했다. 전자본주의 사회에도 빚을 지는 영주와 왕들이 있었고, 소작농이나 수공업자들이 빚을 갚기 위해 노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에 빚을 짊어지게 하는 고리대금업자는 수탈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도래하자 생산 조건이 달라졌고, 돈을 끌어다 쓰는 일의 위상이 달라졌다. 이제 화폐는 산업자본가가 돈을 끌어모을 수 있는 매개체로서 ‘가능태(mögliche) 자본’이 된다. 화폐는 여기서 또 하나의 상품이 되고, 이자는 그 상품에 대한 가격처럼 책정된다. 화폐소유주가 산업자본가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걸 밑천으로 총이윤을 끌어올려서 이자를 포함한 자본금을 상환하는 것이 이자의 메커니즘이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화폐소유주를 화폐자본가, 그 화폐를 빌리는 산업자본가를 기능자본가라 했다.

총이윤에서 이자를 제외한 것이 기업가수익이 되는데, 이것들은 분명 이윤을 뽑아내기 위한 착취에서 나온 것임에도  자체로 비롯된 것인  여겨진다. 이자는 마치 나무가 열매를 맺듯 자본소유에 대한 대가처럼 생각되고, 기업가수익은 자본가가 자신만의 독특한 노동으로써 얻어낸  다른 임금처럼 규정된다. 화폐가 스스로 증식하는 것처럼 상정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는 이자 낳는 자본을 자본관계의 가장 표피적이고 물신적인 형태라고 했다. 이렇게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 이자는 이윤을 향한 착취에서 비롯된  인데도 이자

공황 혹은 경제위기는 어떤 사회 내 경제적 재생산이 심각하게 붕괴된 경우다. 이는 생산물에 필적할 구매력을 지닌 수요가 없을 때 나타난다. 생산물이 화폐자본으로 바뀌지 못하면 자본 축적이 줄어들고, 그만큼 생산수단/노동력에 대한 수요도 줄어든다. 그에 따라 실업이 크게 발생하고 노동계급의 소비도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나타난 이래로 공황은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좀 더 현대적으로 보자면 1929년 대공황은 핵심적인 사건이었는데, 이는 유례없는 장기적인 불황을 낳았다. 그 후 1950년대 포드주의와 같은 생산력 발전으로 장기적인 경제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으나, 다시 1970년대에 이르면 기존의 생산력 발전 모델이 한계에 부딪혀 공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윤율 하락은 1980년대 감세와 사회 복지 지출 감소로써 극복할 수 있었다. 분명한 사실은 공황은 되풀이된다는 점일 테다.

케인스주의와 같은 일군의 학파는 공황을 자본주의 시장경제 그 자체와는 상관 없는 것으로 여겼으나, 마르크스는 공황을 자본주의 생산양식 자체에서 기인한 것으로 봤다. 일찍이 화폐와 같은 매개 수단이 반드시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문제를 공황의 가능성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황에 대한 자체적인 이론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으로 공황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으나, 이것이 공황에 대한 법칙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마르크스는 『자본』 1권에서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말하면서 노동력 가치를 하락시키면서 생산력을 증대하려는 행위, 이를테면 기계의 도입을 이야기했다. 이는 경쟁의 압력과 맞물리면서 생산력의 제한없는

확장을 야기하는데, 반대로 사회의 소비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서로 모순되는 문제로 이어진다. 여기서 소비력을 문제 삼기에는 임금의 총량이 총생산물의 가치보다 항상 낮다는 점에서 설명력이 떨어진다. 정말 공황의 원인이 되는 것은 자본의 과잉생산, 과잉축적이다.

공황은 수익성 낮은 자본과 생산수단의 파산과 파괴를 유발한다. 그로 말미암아 노동자들은 대량 해고를 당할 것이고, 임금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공황은 거대한 파괴과정이다. 하지만 이게 반드시 파괴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회에 내재하고 있는 불균형을 폭력적으로 제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 공황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공황의 메커니즘은 이해할 수 있더라도 이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자본가들은 경쟁의 압력에 놓이기 때문에 거의 강제적으로 자본 축적에 매달리게 된다. 불확실성 속에서 할 수 있는 한 수익을 높일 수 있는 모든 걸 하는 게 그들의 항시적인 상황인 것이다. 이를 딛고 공황을 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편으로 공황의 변수는 무척이나 많고 다양하다. 기술 수준, 신용제도의 상황, 세계시장 내 국가의 위치, 노동계급의 조직화 정도 등이 공황 과정에 개입한다. ‘공황 이론’을 만들기 어려운 까닭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9부 2. 과연 마르크스에게 붕괴론이 있는가?

마르크스는 청년기 『공산당 선언』을 썼을 때, 1847~1848년 공황이 1848~1849년 혁명적 운동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공황이 혁명으로 이어진다고 파악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성급한 일반화였다. 이후의 공황은 반드시 혁명적인 운동을 이끌지 않았다. 심지어는 파시즘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경제위기가 자본주의 붕괴를 이끌 거라는 이른바 ‘붕괴론’은 여전히 힘을 지니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 3권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참된 장애물은 자본 그 자체’라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장애물’은 종말의 의미가 아닌 생산력 발전이 오로지 자본 그자체의 발전으로 제한된다는 의미로서 쓴 것이다. 아울러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는 ‘붕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는 후기 저작으로까지 이어지는 생각이 아니다. 붕괴론은 기본적으로 상대적 잉여가치를 뽑아내려는 자본의 방향이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바라보며, 특히 자본이 구체적인 위기를 만났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본이 공황 이후에 끊임없이 지속되어 온 역사적인 과정을 제대로 참작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근거 없는 예언론 같은 관념이 되기 쉬운 것이다. 이런 생각은 현실에서 패배하고 있는 좌파들의 변명 거리가 되어주곤 했다. 중요한 사실은 자본주의가 이런 예언자적 관념이 없더라도 충분히 나쁘다는 점일 테고, 그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10부 — 1. 삼위일체 정식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봉건적 신분제를 비롯한 구체제의 관습과 세계관을 무너뜨린다. 부르주아-자본주의 사회는 스스로 무너뜨린 것을 토대로 계몽의 보루인 양 문명과 미개를 구분 짓는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부르주아 사회의 그와 같은 특징을 ‘세계의 탈주술화’ , ‘합리화’라 칭하기도 했다. 마르크스도 『공산당 선언』에서 구체제 관습이 무너짐으로써 사회적 관계가 투명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에 어느정도 동의했다. 하지만 『자본』에 이르러서는 그와 정반대의 입장에 선다. 오히려 사회적 관계가 ‘신비화’의 국면에 들어섰다고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서 부르주아 사회의 물신숭배는 그들의 오만한 자기확신에 대한 통렬한 풍자다. ‘삼위일체 정식’은 그러한 물신숭배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파악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생산수단이 생산물을 생산하는 이들과 분리된 게 특징이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팔도록 강제되고, 자본가는 노동자들을 실제 가치보다 더 많이 일을 시킨다. 여기서 잉여가치가 나오는데, 잉여가치 중 일부는 토지소유주에게 지대로 지불된다. 이처럼 자본, 토지, 노동력은 그걸 가진 이(자본가, 지주, 노동자)에게 수입의 원천이 된다.

이는 실제로는 잉여노동을 착취하는 과정에서 얽혀 있지만, 각각 독립적인 가치의 원천인 것처럼 전도된 형태로 드러난다. 이런 도착이 발생하는 까닭은 노동과 물적 생산조건사이의 분리가 자연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노동과 임금 노동 사이의 차이가 간과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결정된 형태인 임노동, 자본, 토지소유가 노동, 생산수단, 토지 그자체인 것처럼 여겨진다. 마르크스는 이를 ‘생산관계의 물화(Versachlichung)’라고 칭한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과 토지 같은 사물을 인격화하는 또 다른 ‘주술적’ 세계를 만들었다. 이는 실제로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허위의식도 아니다. 이러한 물화된 생산관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경제적 파산 밖에 없다. 자본가도 노동자도 이러한 물신적인 위치에서 빠져나오기 어렵고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특권적 위치를 점하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것을 온전히 깨질 수 없는 것으로 바라봐서도 안 된다. 우리는 동시에 물신숭배에 균열이 일어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10부 — 2. 반유대주의에 대한 보론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자본가 개인, 혹은 토지소유주 개인은 거대한 톱니바퀴의 한 부분이다. 자본가, 토지소유주의 과도한 탐욕은 문제의 원흉이 아니며 그들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경쟁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곧잘 나타나는 문제는 물적 존재를 의인화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분명 고통을 낳고 있고, 이를 책임지게 할 구체적인 존재를 찾는 일이 발생한다. 반유대주의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서 찾을 때 자본가 집단을 문제삼는 경우는 드물다. 자본가마다 자본 규모가 다르고, 그렇기에 상황이 다르다. 중소자본가는 파산하는 반면, 대자본가는 독점 이익을 취할 때가 있다. 이때 더 많이 나타나는 것은 중소자본가/착한 자본주의 대 대자본가/나쁜 자본주의의 구도다. 자본가 집단이 아니라면 그 표적은 은행/투기꾼으로 향하기도 한다. 반유대주의는 이처럼 자본주의가 인격으로 환원될 때의 특수한 사례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역사가 깊다. 전근대의 유대인에 대한 혐오는 근대에 이르러 나타난 유대인 혐오와 차이가 있다. 중세의 유대인들은 ‘신을 살해한 자들’이라는 낙인을 받았고, 갖가지 생업에서 추방 당했다. 그들이 기독교인이 되지 않는 이상 수입원으로 남은 선택지는 무역업이나 대부업 뿐이었다. 유대인은 그들의 독자적인 문화양식으로 인해 ‘이방인’의 이미지가 강조될 때가 많았고, 쉽사리 혐오와 핍박의 대상이 되었다. 현대에 오면서 반유대주의의 종교적인 동인은 높은 세속화의 압박과 함께 약해졌다. 전근대에 유대인에게 씌인 ‘돈과 수익에만 관심을 갖고 남의 노동을 착취하는 데 몰두하는’ 이미지는 그게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데 핵심이 된 이상 더는 그들만을 지칭하는 낙인이 되기 어려웠다. 대신 주류 사회에 내재한 부정적인 요소들이 온통 유대인의 것으로 귀속되었다. 현대의 반유대주의는 그들이 지닌 이방인으로서의 성격을 극대화하여 부정적인 요소들을 갖다 붙히는 식으로 작동하며, 유대인이 속해 있는 공동체가 없다는 점을 들면서 그들이 공동체를 파괴하고 무너뜨리려 한다고 여긴다. 금융 자본의 기생적 성격을 유대인과 연결지은 나치즘은 현대 반유대주의의 대표적인 단면이다. 이것이 더 확대해석되면 자본주의의 초권력적 집단으로서 유대인과 그들이 세계를 장악하려는 이른바 ‘세계유대주의’로 이어진다. 이러한 설명들은 당연히 반유대주의의 일부만을 살필 수 있을 따름이다. 『자본』의 일반적인 논의들은 이정도의 논의만 제시해줄 수 있으며, 반유대주의가 사회에 끼치는 구체적인 영향을 알려줄 수는 없다.

 

10부 — 3. 계급, 계급투쟁, 역사적 결정론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들은 계급이나 계급투쟁 개념을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말하지만, 계급론은 부르주아 정치경제학, 이를테면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가 계급간 이해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내놓은 것을 기점으로 삼는다. 계급, 계급투쟁은 『공산당 선언』에 와서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계급 없는 사회의 관점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자본』에도 그러한 관점이 꼭 동일하게 유지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계급을 자주 언급하지만, 그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하지는 않는다. 계급은 보통 구조적인 의미와 역사적인 의미 두가지로 쓰인다. 구조적인 의미는 사회적 생산과정 속의 위치를 뜻하며, 역사적인 의미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구별짓기하는 사회적 집단을 뜻한다. 이때 구조적인 의미와 역사적인 의미가 꼭 일치하는 법은 없다. 『자본』이 주로 다루는 건 전자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계급은 꼭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전체로서의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층위를 살펴야 구체적인 계급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구조적으로 결정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생활환경은 시대를 막론하고 서로간 차이가 극명할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내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구조적으로 결정된 계급이 반드시 역사적-사회적 계급으로 바뀌지는 않으며, 계급의식이 생기더라도 꼭 자본관계를 해방적으로 극복하는 방향으로 향하지 않는다. 계급투쟁은 자본관계 존재하는 한 뒤 따른다. 계급의식은 그러한 투쟁을 만들면서도 계급투쟁이 계급의식을 낳기도 한다. 계급투쟁의 구체적인 형태는 직접적인 대립일 때도 있고, 국가를 경유하는 간접적인 방식일 수도 있다.

일군의 좌파 운동은 이러한 계급투쟁이 자본주의 위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공황 분석에서 계급투쟁을 중요한 요소로 여기면서도, 공황과 같은 자본주의 위기는 계급투쟁과는 별개로 자본주의 내재적 경향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계급투쟁은 대체로 자본주의 내부의 투쟁이기에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삼위일체 정식과 같은 물신적인 관계의 (이를테면정당한 임금’) 벗어난 요구를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계급투쟁은 혁명적인 방향으로 이어질 있는 역동성도 동시에 지닌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물신주의는 꿰뚫어볼 없거나 깨지지 않는 아니다. 그틈에서 급진화의 흐름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때마다 노동자의 계급투쟁은 국가의 잔혹한 탄압을 마주해야 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투쟁을 제도화하거나 법적인 틀로 유화하는 우회로를 만들었으나 급진적인 투쟁은 여전히 핍박을 받는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러한 계급투쟁에 대해서 오류를 범했다. 하나는 계급의식이 느리든 빠르든 필연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추론이며, 다른 하나는 계급의식이 혁명적인 내용을 품고 있을 거라는 가정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런 추론이 타당한 경우는 드물었다. 혁명적인 지향을 담고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은 일시적인 현상일 때가 많았다. 필연성을 담은 추론은 역사적 결정론으로 이어진다. 『공산당 선언』과 『자본』의 일부(본원적 축적에 대한 ) 그런 흔적이 있다. 하지만 『자본』의 나머지 부분으로써 마르크스가 분석한 것은 오히려 혁명적 발전이 이렇게 드문지, 분노가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지, 이유를 규명한 것에 가깝다. 마르크스가 역사적 결정론에 가까운 얘기를 남긴 냉철한 분석이 아닌 일종의 희망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혁명적인 발전을 예단한 것이 아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 혹은 불확실성에 대한 논의인 것이다.